Fender Rhodes Mark Ⅰ Suitcase 88(1972년 제조)
1978년에 구입해서 지금까지 한 주인만 섬겨온 애정 어린 악기.
1972년에 제작 개시된 이 Mark I. 1978년 즈음은 이미 다음 모델(Mark2)로의 이행기에 접어들어 일반 악기점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이 Mark I모델을 손에 넣고 싶었던 나는 시부야 YAMAHA 한 귀퉁이에 우두커니 놓여 있던 마지막 Mark I(게다가 73이 아니라 88건반!)을 발견하고 즉시 점원에게 달려가 "제발 부탁이니 다른 사람한테 이걸 넘기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 그토록 동경했던, 갖고 싶어 안달했던 이 로즈 피아노를 큰 맘 먹고 할부로 구입. 당시 가난한 학생이었던 나는 다달이 돌아오는 할부금을 갚지 못해 몇 번이고 독촉장이 날라왔고 부모님께 엄청 혼이 났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스스로 할부금을 지불하고 구입한, 잊을 수 없는 악기다.
‘지금까지 줄곧 소중히 사용해 왔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지만, 실은 90년대 몸 담았던 소속사의 악기 창고에 보관했다가 큰 수해를 당해 침수되고 말았다. 보관했던 악기들 대부분이 물에 잠겼다. 덩치도 크고 무게도 꽤 나가는 이 피아노. 투어나 레코딩을 위해 자주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악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엽지만 한동안 그대로 방치해 두고 있었다. 사실 다시는 소생이 어렵겠지 하며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물론 그래도 버릴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십 수년 전, 도쿄에 있는 모악기점에서 이 Fender Rhodes Piano를 전문적으로 수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문의해보니 부활이 가능하단다. 물에 잠겼었기 때문에, 해머 액션(Hammer Action)이나 스위치 등 악기 내부를 거의 다 교환했고, 스피커부의 외장도 전부 교체해서 완전히 소생시켜(상당한 비용이 들긴 했지만…),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이 스튜디오에서 함께 하고 있다. 미안해. 다시는 혼자 두지 않을게. ^^
특징적인 것으로, 80년대 일세를 풍미했던 AOR뮤직에서는 기본이라고 할 수 있었던 Dynomite Piano를 내장하고 있다는 점. 당시 SUN MUSIC(으로 기억한다)에 가져가서 그걸 장착했고, 특유의 솔리드한 음색에 대만족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 수리로 Dynomite Piano도 완벽하게 소생시킬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역시나 이 피아노를 라이브 공연 때마다 매번 여기 산 속에서 라이브 회장까지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앞으로 레코딩을 통해 자주 사용하려고 한다. 이처럼 사연 가득한 나의 애기(愛機); Fender Rhodes Mark I Suitcase 88. 모양마저 쿨하지 않은가. ^^V
참고로 이 악기로 보여준 명연주는 많이 있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연주(&음색)는 Chick Corea Friends의 ‘Sicily’, Herbie Hancock Man Child의 ‘Heart Beat’, George Benson Breezin’의 ‘Affirmation’ 가운데 로즈 솔로 부분 등이 최고다. Crusaders Scratch의 ‘Hard Times’나 앨범 Southern Comfort나 Those Southern Nights는 전부 좋다. 그 밖에도 정말 많지만 역시 대부분이 미국계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