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불상 앞에서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편성으로 유튜브 영상을 위해 연주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곳에서 연주를 해왔지만 박물관 안에서, 그것도 역사적 유물 앞에서 연주를 하는 것은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습니다. 매우 신선했고 평소 공연장과는 다른 분위기로 관객이 없는 만큼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반응이 매우 신선하고 새로운 문을 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후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같은 형태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울에서의 유물은 특별했다. 1급 국보, 2점의 반가사유상 ; 미륵보살이 전시된 '사유의 방'에서 연주한다는 기획이었다. 그곳에서 연주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그 전시장에서의 연주는 여러 가지 제약으로 인해 불가능하다고 하여 작년의 기획은 한 번 무산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다른 일로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이 전시; 사유의 방에 들어가서 무심코 내뱉은 말이 '역시 여기서 연주하고 싶다'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 말을 들은 박물관 직원이 그럼 박물관 극장 '용'에서 이 전시와 연계한 기획공연을 하자고 거의 즉석에서 결정한 것 같은 흐름. 그리고 이번 11월 3일~ '음류(音流)' 공연으로 이어졌습니다.
기획공연의 경우 당연히 사유의 방을 주제로 한 음악을 연주하는, 즉 신곡을 만들어 초연하는 것이 대전제가 되었는데, 그 순간 문득 '이 정도 주제를 다룰 거면 제대로 된 음원으로 여러분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생각은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나왔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스태프들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던 것을 잘 기억합니다. 그게 초봄 무렵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11월을 목표로 삼고 거기에 이르는 복선도 논의하여 6월 & 9월에는 극장 '용'이 아닌 박물관 로비 및 야외광장에서 공연이 2회 기획되어 11월 본 공연으로 이어졌습니다.
신곡에 대해,
공연의 전제가 되는 '사유의 방' 곡을 만드는 과정이 지금까지와는 많이 달라서 솔직히 쉽지 않았습니다. 영상 작품이나 이벤트, 마감 기한이 있는 음악 제작을 많이 경험해봤지만, 큰 산이 멀리 보여 그곳을 향해 올라가는데 이번에는 정상은 보이지만, 그곳으로 가는 길이 보이지 않아 올라갔다가 내려오고, 내려갔다가 올라가고를 반복하는 여정은 처음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부족함도 있겠지만, 역시 이 주제 자체가 심오해서 어느 것이 정답인지, 어디가 도달점인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점점 지나가고, 한편으로는 라이브도 하고 다른 작업도 하고, 시간은 점점 더 흘러가버렸습니다. 멀리 있던 산꼭대기가 가까워지는데 올라갈 길이 보이지 않는 상태가 계속되어 다소 조급한 마음이 들던 어느 날, 문득 '그래 이게 생각이라는 것, 즉 사유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 결국 하나의 절대적인 답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눈앞이 환해졌습니다.
너무 깊게 생각하고 복잡하게 담는 것, 그것을 배제하고 꼭 필요한 것만 남긴다, 이 과정 자체가 바로 사유라고. 이것이 입구의 문이 활짝 열린 순간이었어요. 거기서부터 연이어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연결하고 배제하는 행위의 반복.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반가사유상, 미륵보살. 점차 여러 가지가 눈앞에 펼쳐지고, 이것은 단 한 곡으로 내가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즉, 하고 싶은 말이 많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메인 테마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것이 아니라, 메인 테마를 제시하고 거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생각하니 크게 공감대가 형성되어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거기서부터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게 9월 중순쯤, 그러나 그 무렵에는 연이어 라이브가 있었고, 한일 왕복도 많아서 이번에는 실제 작업할 시간을 좀처럼 찾지 못했고… 이동 중이나 대기 중 작업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 방법과 대책도 꼼꼼히 생각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라이브를 하면서 그 사이사이에 음원 녹음을 진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라이브 멤버들이 녹음에 참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그런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멤버들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기도 했지만요.
이번에 음원 발매한 3곡 >
1. SAYU ~ Main Theme : SAYU의 얼굴이 되는 메인 테마
2. Rainbow Reunion : 무지개 다리 위 사람과의 만남, 재회.
3. The Hidden Gate : 아무도 모르는, 바로 옆에 있는 다른 세상, 다음 세상으로 가는 문.
각 곡마다 역할이 있고, The Hidden Gate는 매우 중요한 곡이 될 것 같습니다. 또 다음 세계로, 그 세계는 도대체 어디로?
이야기는 다시 라이브로 돌아와서, 참가 멤버들도 각자의 생각으로 멋진 연주와 기량으로 참여해주었습니다. 크리스 씨는 4년 만에 일본에서 와 참여해주셨고, 박상현 씨는 통기타에 더해 만돌린&기타렐레까지. 그리고 이채 씨도 멋진 바이올린에 더해 만돌린까지. 그 때 본래의 바이올린 역할을 비올라 박용은 씨가 열심히 해주고, 어쿠스틱과 일렉트로닉 모두 잘 받쳐준 조후찬 씨, SAYU의 메인 테마를 첼로로 감성적으로 연주해준 나인국 씨, 첫 참여로 열심히 해준 플룻 오아라 씨....
수고하셨습니다 & 감사합니다.
양방언(피아노), 강이채(바이올린), 박용은(비올라), 나인국(첼로), 오아라(플룻), 박상현(기타), 조후찬(베이스), 크리스토퍼 하디(퍼커션)
이번 공연의 가장 큰 특징은 순수한 공연이라기보다는 사유의 방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각자의 이야기를 음악과 연관시켜 그 흐름을 연출하는 큰 역할을 담당해준 연출감독 2018 평창올림픽 때의 맹우 김태욱 감독님. 그의 지휘 아래 작가, 영상, 조명 등 훌륭한 스태프들이 모여 완성도를 공연 직전까지 끌어올리는 그 자세에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대단했어요. 그리고 음향은 오랜 파트너인 스타네트웍스. 작년 국립극장 NEO UTOPIA에 이어 이번에도 대대적으로 Immersive Sound를 도입해 주셨어요. 연주의 믹스는 물론 효과음까지 멋진 입체 음향을 들려주어 일반 콘서트와는 또 다른 연출에 일조해 주었습니다. 스태프 여러분께도 큰 박수를 보냅니다!
코로나 이후 모든 아티스트가 그렇겠지만, 나에게도 연주할 수 있는 기회와 장소가 많아지고, 더욱이 새롭게 만든 음악을 특별한 라이브로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행복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그 험난한 산을 열심히 올라간 10월이었습니다. 내 곡 중에 October's Gone이라는 곡이 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바로 그런 느낌입니다. 지나가버려서 조금 쓸쓸한 느낌. 하지만 다시 만날 수 있겠지, 그리고 다시 만날 때는 다음 사유 ; SAYU의 곡으로 여러분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객석에서 본 여러분,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항상 응원해주시는 분들, 많은 응원에 감사드리며, 해외에서도 와주신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지금은 11월 18일에 방영되는 SBS 다큐멘터리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고래와 나’ 음악 제작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또 전혀 다른 모드가 되어서 멋진 영상과 스토리에 감탄하며 열심히 작업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시 알려드릴게요.
갑자기 추워진 날씨, 여러분 모두 건강 조심하세요. 그럼 또 뵙겠습니다.
양방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