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usic & Moment


My memories #1. 우연한 계기 'NO BODY의 추억'

  •  WRITER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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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20 11:00  



 

얼마 전까지 유행하고 있던 SNS의 글 중에서 「자신이 영향을 받은 앨범 10선」이라는 것이 있어, 그 안에 우연히 본 기억이 있는 앨범을 보았다.

어? 본 적 있어, 혹시 참가했을지도? 아니, 한 것 같아, 그래, 했었어, 라고 기억이 자꾸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상한 감각. 그건 아마 음악으로 일을 시작했던, 새로워서 잊을 수 없던 시기의 일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대학 4~5년(만 20~21세), 첫 메이저 아티스트의 세션으로 일을 시작한 것이 야마모토 다츠히코(Tatsuhiko Yamamoto)씨. 시티팝의 귀공자라 불리며 음악성도 높고 세련된 사운드와 단정한 외모로 주목받기 시작했을 무렵. 그의 투어에도 참가하게 되어 얼마 후, 다츠히코 씨가 록으로 음악을 전환하게 되어, 그 프로듀서로서 나타난 것이 아이자와 유키오 씨(Yukio Aizawa, Gt&Voc)와 키하라 토시오(Toshio Kihara, Gt&Voc) 씨 2명으로 이루어진 NO BODY였다. NO BODY는 연주와 노래는 물론 타 아티스트의 작곡, 프로듀스, 그리고 CF 악곡까지 폭넓게 다루는 2인조 유닛. 지금에 와서는 드물지 않은 것이 유닛 형태이지만, 당시는 참신했다. 그들은 1974년부터 일본을 대표하는 록 가수 야자와 에이키치 씨의 투어를 서포트하고, 앨범도 다루고 있어 내가 만난 당시가 막, 야자와 씨를 떠나 유닛 데뷔 직후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참고로 아이자와 씨의 부인은 저명 작사가 류마치코 씨로, 두 사람은 업계에서 유명한 원앙부부이다. 함께 작업한 아티스트는 안루이스, 오기노메 요코, 요시카와 코지, 아이카와 나나세를 비롯한 다수, 그리고 CF도 많이 다루는, 당시 새로운 형태의 아티스트&프로듀스 유닛이었다.

 

야마모토 다츠히코 씨에 대해서는 또 언젠가 쓰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오늘은 NO BODY의 이야기이다.

원래 멋지고 멋진 다츠히코 씨의 음악이 NO BODY 프로듀스의 영향으로 좋은 마무리로 록 장르로 물들기 시작했고, 다츠히코 씨의 앨범도 NO BODY와 함께 레코딩. 그 후 영화 「흉탄」의 주제곡을 다츠히코 씨가 부를 때도 NO BODY가 프로듀스로 레코딩에 관여하게 되는 동안, NO BODY가 라이브를 하게 되어 라이브 공연으로 키보드 연주하지 않겠냐고 말을 걸어, 그때부터 점점 그들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다.

 

자, 제가 NO BODY와 관련된 오리지널 앨범&싱글은

 

★Pop Gear 이건 참여했는지 기억이 확실치 않다. 하지만 이 시기의 악곡들을 많이 라이브로 연주했고 녹음한 것 같기도 한데... 대부분의 곡들은 라이브로 했다.하지만 앨범에 참여 뮤지션 크레딧이 없다. 너무하네...^^; 

 

★ LIVE 원@일본 청년관 1983년 12월 22일 SNS에 게재된 앨범 자켓!

이 라이브는 1983년 12월 23일, 내가 대학 6학년 때 졸업 시험 직전! 무모함도 좋은 점이..;; 그래도 굉장히 즐거웠다! 여기에 수록되어 있는 Welcome to my party, Marilyn 등은 다츠히코 씨의 라이브에서도 많이 연주했던 것, 그러고보니 바로 그 1년쯤 전, 같은 일본 청년관에서 야마모토 다츠히코 씨 라이브 레코딩이 있었던 기억이.

 

★ Got a Feeling (1984년)

이 앨범은 지금은 없는 롯폰기 Sedic Studio(그리워!) 에서 드럼 도카시키 유지(Yuji Togashiki)씨, 베이스 마츠다 료(Ryou Matsuda)씨, 키보드; 나 이렇게 멤버로 레코딩했던 기억이 난다. 첫 번째 Got a Feeling은 녹음할 때부터 굉장히 멋지고 익사이팅했다! 그 밖의 곡들은 조금 기억이 가물거린다. 어쩌면 한 곡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I'm Nobody (싱글)

이 싱글은 MC4와 Linn Drum 드럼머신을 동기(Sync)사용한 데에, 라이브연주는 NO BODY와 내가 진행한 트랙, 애수 어린 곡조가 내겐 완전 충격이었다. 그렇게 팝적인 곡을 쓰는데, 이런 스타일의 곡도 쓰는구나! 라며 놀란 기억이 있다. 여담이지만, 이 체격 좋은 등이 담긴 싱글 재킷 촬영 건. 체격 좋아 보이는데, 등 모델 해볼래? 라는 질문을 받고는 즉각 그만두었던 기억도 난다. 아직 초보인 나는 상당히 초조했다. ^^;

 

그 무렵 라이브를 적극적으로 시작함과 동시에 그들은 프로듀스 팀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프로듀스 작품 : CF나 다른 아티스트의 레코딩도 참가 제안을 주었다. 라이브도 물론 훌륭했지만 녹음에 있어서도 독특한 접근법이 있었다. 소울풀한 부분과 테크놀로지를 공존시켜 만들어가는 자세와 그 노하우를 많이 배웠고, 아직 학생이었던 젊은 시절에 경험을 많이 하게 해주어서 새로웠다.

 

둘의 노래와 기타가 너무 멋있게 '짜릿짜릿’하다고 할까. 당시 ‘마지비트 Mergy Beat 메들리’라는 곡을 라이브로 자주 연주했지만, 역시 리버풀&브리티쉬한 영향이 짙은 팝 센스가 빛나고 있었다.나는 그 후 얼마 후에 하마다 쇼고(Shogo Hamada)씨의 음악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 전에 록의 실제 체험으로서 매우 귀중한 경험이었고, NO BODY와의 경험이 있었기에 하마다씨의 음악에도 쉽게 들어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마다 씨와의 이야기도 언젠가 쓰고싶다.

 

NO BODY, 라이브 연주 활동은 당시에 아직 초기 단계라 라이브 하우스:신주쿠 Ruido 근처에서 시작되었지만, 내가 있던 말 즈음에는 일본 청년관에서 라이브 레코딩 할 때까지 성장&알려졌다. 그러고 보니 NHK-FM에도 라이브 연주&토크로 출연했다.(야마모토 씨 하고도 같은 NHK-FM 라디오 프로에 출연했던 거 기억한다^^) 그런 그들과 함께 있으면 언제나 즐거웠다. 외모는 무서운 느낌이 있지만 사실 전혀 무섭지 않고 엄청 상냥했다. 뒷풀이로 젊은 우리에게 부과하는 고행은 ‘주먹밥 한입에 먹기’, 상냥한 어조로 ‘그럼, 가볼까~’라고 말하곤 했었다. 배가 터질 것 같았던 기억이 나지만, 그것 또한 즐거운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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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서술한 라이브 음반을 이번 기회에 들어 보았다. 다시 듣는 것은 35년 만인가. 레코드의 B면 첫번째 곡 Too Far Away 전 멘트에서 "지금은 눈앞에 없어도 지금까지 함께 음악을 해왔던 다양한 음악 동료에게 바친다"는 MC가 크게 다가왔다. 지금 나도 NO BODY 두 분에게 같은 생각이 든다. 내가 이렇게 음악을 하고 있을 수 있는 데에 분명히 영향을 준 분들.

 

잊을 수 없는 일화 하나가 있다. 의학 5학년 말 아버지와 무슨 일이 있어도 대학은 졸업하겠다고 한 약속으로 한 번 음악을 접었었다. 당시 참가하고 있던 야마모토 다츠히코 씨 투어도 그만두고, 음악계와는 거리를 두고 있던 마지막 6학년 후반의 어느 날, 아이자와 유키오 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떻게 지내?」 「사실은 숨어서 음악하는 거 아니야?」 「음악 돌아올 결심했어?」라고 평소의 모습^^; 이야기를 들어보니 가까운 시일 내에 자치의대 축제가 있어, 항상 하는 키보드가 할 수 없게 되어서, 요컨대 도와주지 않겠냐는 이야기.

「음~~」라고 망설였더니 「음악 즐겁잖아, 사실은 하고 싶은 거죠?」라고 악마의 속삭임&사실은 그대로이고 날카로운 지적. 결과 자치 의대에 가게 되어, 그 연말 졸업 시험 직전의 NOBODY 라이브 레코딩에도 참가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은 매우 귀중하고 사랑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Too Far Away MC의 의미가 이제 와서 스며드는 것이다.

 

NO BODY,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별로 정보가 없어서... 혹시 아시는 분 있으면 알려주세요. 꼭 다시 만나고 싶어요.

아이자와 씨, 키하라 씨,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런 추억과 기억이 하나의 SNS에 게재된 앨범 재킷에서 나오게 된 것에 감사합니다.

 

양방언